대구경북 출신 어느 어른의 고백
어렸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김대중 전 대통령만 보면 하시던 말들이 있었다.
"빨갱이" 라거나 "저 쩔뚝발이 또 나왔네" 라는 말들.
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빨갱이 인지, 그렇게 판단하는 구체적인 증거나 정황은 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 당연히 본인들도 모르셨을테니 어린 아이에게 친절한 설명을 기대하기는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져 김대중 전 대통령이 싫었기에 그의 다리가 불편한 것을 위로하거나 동정하기 보다는, 그 불편함을 조롱하는 "쩔뚝발이" 라는 표현을 쓰셨을 것이다.
당시 매일같이 빠짐없이 읽으시던 조선일보에서 김대중을 그렇게 싫어하고 빨갱이로 몰아부쳤으니 그러한 선동에 세뇌가 되었으리라. 혹은 주변인들이 싫어라니 나도 싫어진 것이리라.
나는 그렇게 성장하다가 초등학교 수학여행을 가서 국회의사당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운이 좋았는지 당시 당의 총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아이들이 방문했다는 소식을 듣고 흔쾌히 같이 사진을 찍겠다고 하셔서 우리 반 친구들 모두 김대중 전 대통령과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막상 직접본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범하면서도 환하게 웃는 검은머리 할아버지 느낌이었다.
수학여행 후에 선생님이 기념으로 수학여행 사진을 나누어 주셨는데, 그때 받은 한장의 사진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을 받자마자 나는 걱정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싫어하는 사람인데.. 어떻하지?
그래서 나는 집에 와서, 가운데 김대중 대통령 있는 부분을 칼과 가위로 잘라냈다.
나의 수학여행 사진을 보시던 아버지 어머니는 잘린 사진에 당연히 질문을 하셨고, 나는 머뭇거리다가 사실을 말하였다. 그리고 숨겨둔 잘라낸 김대중 전 대통령 사진을 내밀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당시 아버지는 별 말씀을 하지 못하셨던 것 같다. "이러지 않아도 되..." 이런 말씀을 하셨던 거 같다.
이후 정치이야기를 그다지 적극적으로 하지는 않으셨던 것 같다.
대학생이 되고, 특정당에 가입하지도 않고 학생회 활동도 하지 않았지만, 내가 배우고 알고있고 느끼던 "김대중은 빨갱이이고, 불순분자"라는 공식은 금방 깨졌다.
상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논리적인 생각을 하고 역사를 배우고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노력을 조금만 한다면 금방 알 수 있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아니면 안되고 국민의힘이 되야만 경제가 살리고 민주주의가 유지된다는 말도 안되는 논리. 사실은 정반대인 현실을 깨닫기 위해서는 TK 지역을 벗어나서 객지 생활을 해봐야 한다. 서울이건 미국이건 유럽이건.
계속 TK지역에 있으면 세뇌당한 그 거짓에서 벗어나기도 쉽지 않다.
2025년 오늘날의 세뇌는 아마도 이런것이다.
- 윤석열은 나라의 임금이고 실수 좀 햇다고 뭐라고 하면 안된다.
- 민주당이 사사건건 발목 잡았고 그러니까 윤석열이 비상계엄했다.
- 민주당이 나쁜놈들이고,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지켜야한다.
이러한 세뇌에서 사실 따위는 중유하지 않다, 그저 그렇게 믿을 뿐.
나중에 사실이 아닌것이 밝혀지면? 뭐..그러면 그런거지 뭐 어쩌라고? 이렇게 반응하거나, 기억나지 않는 척 하거나, 몰랐다고 하거나 한다.
사람이 죽어도, 나라가 망해도, 사회시스템이 붕괴가 되도, 우리의 가여운 아이들이 죽어도...나는 몰랐고 나는 기억나지 않는다...
TK 지역의 저 사고방식을 용서해서는 안되는 이유는, 그 사고방식이 나라와 사회 아이들까지 파멸에 이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세뇌당한 사람이 또다른 세뇌를 시키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깨어있는 분들을 응원하고 지원하고, 세뇌된 그 사람들을 용서하지 말고, 분노하고 또 분노해야한다. 나의 아이와 나의 친구와 나의 가족이 노예의 삶을 살지 않으려면.